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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1월 25일
Misogynistic, distorted readings of early medieval Chinese texts - I
아, 제목 길다.

西晉의 중신으로 賈充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 자신 魏晉 교체 과정에서 활약한 부분도 있지만 그의 가정사 자체가 여러가지 의미에서 서진의 건립과 몰락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면이 있고, 그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이 집안 여성들의 활약(!)이다.

가충에게는 원래 부인 이씨가 있었으나 친정 아버지의 형벌에 연좌되는 탓에 가충과 이혼하게 되었고, 가충은 郭槐라는 부인을 새로 얻게 되었다. 이후 이씨는 晉 武帝 司馬炎의 즉위에 따른 사면 덕에 가충의 부인으로 돌아 올 수 있게 되었으나 둘째 부인인 곽괴의 존재로 인해 가충과는 항상 별거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진서 가충전 왈, 사마염이 특별히 조서를 내려 가충은 정부인을 둘 맞을 수 있게 허가하였음에도 가충이 끝까지 감히 그럴 수는 없다고 겸양한 이유는 사실 이씨가 돌아 오는 것에 히스테리를 부리는 곽괴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고. 전처 이씨가 기품있고 학식있는 인물로 묘사되는 반면 곽괴는 성격 나쁘고 못생긴 여자로 전해지고 있다. 전처 이씨에 대해 극도의 견제와 질투는 그렇다치더라도 그 외에 몇 가지 도를 넘은 곽괴의 언행이 전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들 유모들에 관한 이야기. 유모가 세 살난 장남을 안고 정원에 나와 있었는데 마침 귀가하던 가충이 아들을 얼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곽괴. 남편과 유모 사이를 의심하여 유모를 때려 죽였다. 아들은 애타게 유모를 찾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몇 년 후 돐이 막 지난 둘째 아들을 안고 마당에 나와 있던 유모와 마주친 가충은 아들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곽괴가 또 이 모습을 보고 남편과 유모 사이를 의심하여 유모를 때려 죽였다. 역시 둘째아들도 젖을 먹지 않으며 제 유모를 찾다가 죽고 말았다. 이후 집안에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고 가충은 후사가 끊길 지경. 세간에서는 후사가 태어나지 않게 된 것은 곽괴 탓이라고 쑤근대고 있었다고.


한편, 가충과 이씨 부인과의 사이에는 딸이 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진무제 사마염의 형제 司馬攸의 비가 되었고, 이 꼴을 눈뜨고 볼 수 없던 곽괴는 자기 딸을 진무제의 태자 司馬衷(나중에 惠帝로 즉위)의 비로 보냈다. 사실 이 과정에는 권력 다툼에서 밀린 가충이 관중으로 전출되려는 찰나 딸을 태자비로 들임으로써 낙양에 남아 있을 구실을 만들자는 순욱의 책략도 작용하였다. 가충-곽괴의 딸을 태자비로 만드는 데 순욱의 공이 컸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저간의 사정에 대해 사서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래 사마염은 韋瓘의 딸을 태자비로 들이려 하였으나 곽괴의 로비에 넘어간 황후와 순욱 등 측근들의 강권에 휘둘려 결국 가충-곽괴의 딸을 태자비로 맞게 되는데 이 여자가 나중에 賈皇后로 알려진 賈南風이다. 무제 사마염은 가충-곽괴 부부의 딸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는데, 그 이유인 즉, 위씨 집안 내력이 본 바탕이 어질고 아들이 많으며 아름답고 키가 크며 하얀 데 반해, 가충-곽괴 집안은 질투가 심하고 아들이 없으며 추하고 키가 작으며 시커멓다고. 그래도 황후 및 荀勖 등의 강력한 추천으로 결국 태자와 나이가 맞는 가충-곽괴네 둘째 딸로 정했으나 워낙 키가 작아 예복을 입힐 수 없어 태자보다 연상인 장녀 가남풍을 태자비로 맞았다.


가남풍, 자기 어머니 못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듯, 질투가 심하고 음모 꾸미기를 좋아하는 탓에 태자는 그녀를 몹시 두려워 하여 다른 비빈들조차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사마충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간인 탓도 있는 듯). 잔혹한 성격으로 직접 사람을 죽인 일도 몇 차례 있었고 심지어 창으로 임신한 첩의 배를 찔러 태아를 끄집어 내 죽인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만행을 접한 무제 사마염은 그녀를 유폐시키려고 하였으나 순욱 등의 간언으로 그냥 놔두었다고 하는데, 이게 서진 붕괴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게 아니었을까. 가짜 임신 소동 등 숱한 일화로 볼 때 가남풍은 아직 태자비였을 시절부터 워낙 트러블 메이커였던 듯 하다. 사마염은 죽기 전에 이 여자 처리했어야 했는데 큰 실수 한 듯.


이 가황후와 혜제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고 혜제는 謝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遹을 얻었는데 생전의 무제 사마염으로부터도 총애받았었고 그 영민함으로 인해 혜제의 뒤를 이을 적임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곧 남편인 혜제 대신 실질적으로 서진 정권을 쥐고 있던 가황후는 그를 廢하였고 그 후 몰래 측근을 시켜 살해하였다. 이 사건으로 안 그래도 나쁜 가황후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고 가황후의 전횡에 반발한 司馬倫 司馬冏 등이 궁으로 돌입, 황후를 폐한 후 독주를 먹여 죽였다. 가황후의 일당 핵심인물도 모두 죽였다. 이는 팔왕의 난, 이민족의 침입, 즉 서진의 붕괴로 이어진다.

가충의 집안 사정만 잘 알면 서진 역사의 중요한 축을 이해하게 되는 셈. 참.......어머니나 딸이나 대단하오. 물론 어디까지나 사서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는 전제 하에.

덧. 결국, 포스팅 제목을 충실히 따르자면 서진이 단명한 것은 가남풍 때문. 거슬러 올라가면 딸을 그렇게 낳아 키운 곽괴, 집안 단속 못하고 찌질거리던 주제에 딸을 황실에 시집보낸 가충. 그리고 가남풍을 사마충의 정실로 맞아들이도록 공작한 순욱 일당 등에게도 책임이 있다. You are not taking this seriously, are you?

ふざけ, 晉
# by damekana | 2008/01/25 11:14 | Carrel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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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oyce at 2008/01/25 11:49
두 번째 유모가 죽은 것에는 가충의 부주의도 있군요.
'때려 X일' 때 대체로 사용되는 도구는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
Commented by damekana at 2008/01/25 12:09
정확히 말하자면, 죽을 때까지 채찍질을 했다고 합니다.
Commented by 루드라 at 2008/01/25 14:43
혜제의 태자를 죽일 때는 절구공이로 때려 죽였다죠.
Commented by damekana at 2008/01/26 03:24
-_-.....한을 품고 죽은 폐태자의 저주를 두려워한 사람들 이야기도 쓸까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생략했습니다.
Commented by Cato at 2008/01/27 23:14
참 아스트랄한 사건들의 연속이군요. 마지막에 가황후를 폐하고 죽이는 장면은 라스푸틴의 최후를 약간 연상시킬 정도네요. 역시 지도자는 단호한 면이 있어야 하나요-_-;; 사마염의 얘기를 읽다가 西漢 宣帝였던가요...儒家와 法家를 적절히 섞어 통치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던 황제의 말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Commented by damekana at 2008/01/28 12:13
저 무렵 서진 조정에서는 심심하면 황제의 조칙을 위조하여 사고치는 인간들이 많았지요. 혜제 즉위 과정에서도 그랬고, 혜제가 즉위하고 난 다음에는 그 자신이 저능아라서 더 그랬겠죠.
절정은 궁으로 돌입한 일당이 가황후한테 황후를 폐하고 사약을 내리는 조칙이 나왔다고 했더니 그녀 왈, 이제까지 조칙은 다 내가 만들어서 내보냈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되려 큰소리를 치는 부분이랄까요. 역시 생의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성격을 일관되게 보여준다고 할지, 막장 정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할지, 암튼 아스트랄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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