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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4월 02일
이제키엘 폭스크로프트라는, 베일에 싸인 17세기 과학자, 연금술사에 관한 소설을 읽다.
다빈치코드, 라비린토스 같은 historical quest thriller 부류에 넣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작다. 대신,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그 공간에 익숙하면 이입이 쉽고 상상의 나래를 펴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으로 되어 있는 소설의 설정을 그대로 따르면, 가이 폭스 나이트에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와중 주요 등장인물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 강가를 걷다가 괴한에게 습격을 받을 무렵, 나는 같은 장소에서 마틴, 토모요 등과 함께 불꽃놀이를 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거나. 소설에서 거론되고 있는 동물보호 운동가들의 시위를 목격했다거나. 일련의 살인이 벌어졌다고 하는 자전거도 못 지나가는 좁은 골목길을 매일 걸어 다닌다거나. 다만, 소설의 무대가 되는 장소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지식이 없으면 읽는 재미가 반감...정도가 아니라 격감되는 작품이라 선뜻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가 없다. 대학이라는 곳은 몇 세기전이나 지금이나, 바깥 세상의 조직과 달리 누군가 한 번 자리를 꿰차면 죽거나 정년 퇴임할 때까지 공석이 생기지 않아 신규임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물론, 분야에 따라 이야기가 다르고, 게다가 요즘은 연구실적에 따라 정년보장을 하네 마네 시끄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현상도 대학이라는 기구의 전체 역사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최근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은 모종의 수요에 부응하거나 어디선가 뭉칫돈이 들어와 (결국 같은 이야기) 새로운 자리를 만드는 경우도 자주 있다. 아니면 새로운 대학이 생기거나.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심을 가진 젊은 학자가 좋은 대학에 교수가 되려면 기존의 누군가가 죽거나 정년퇴임하거나 외부로 나가버려 빈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럴 조짐이 없다면, 그 젊은 학자는 어떻게 할까. 요즘 같으면 최저임금 보장도 안 되는 시간강사로 이 대학 저 대학 떠돌면서 강의를 하거나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여 모종의 액션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옵션도 없었던 상황이라면? 섬뜩하지만 간단한 답이 있다. 기존의 교수들을 죽여서 빈 자리를 만든다. 한 두 사람 죽이면 그 빈 자리 놓고 경쟁도 셀 테니, 어차피 손에 피 묻히는 김에 사고사를 위장해 여러 명을 죽여서 빈 자리를 많이 만들고, 의심받지 않은 채 그 빈 틈을 통해 위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게 이제키엘 폭스크로프트라는 인물이 저지른 일련의 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하는 소설이다. 다만, 그는 그 자신을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게 핵심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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