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테고리
최근 등록된 덧글
저도 의천도룡기에서 처음 읽었..
by damekana at 06/25 산상노인 이야기는 김용의 의천.. by 루드라 at 06/24 예술사도 그렇게 되려나요? 다양한.. by damekana at 06/14 음 과연 종교사에서는 확연할 것 .. by joyce at 06/14 본인이 제대로 인지못한다는 게 역.. by damekana at 05/23 저만 괜시리 스트레스를 받는 게 .. by damekana at 05/23 사람이 하는 모든 일 중에서 가장 .. by 루드라 at 05/22 예전에 담임선생님이 평소에는 .. by 루드라 at 05/22 그런 경우도 있군요. 불어, 독어.. by damekana at 05/20 역시 그런 걸까요. by damekana at 05/20 이글루 파인더
최근 등록된 트랙백
태그
skin by 이글루스 |
2008년 06월 14일
어찌 보면 도식적일 수 있는 질문. 동아시아의 종교전통에 관한 연구들 중 폭넓게 '"~教史" (중국불교사, 한국불교사, 일본불교사, 등등) 혹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時代 ~教史" 같은 연구를 자처하고 있는 수많은 연구들은 名과 實이 상부하나? 이런 연구들은 기본적으로 해당 전통의 소위 '경전'에 적혀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이런 텍스트들은 거의 예외없이 기본적으로 descriptive한 게 아니라 prescriptive한 성격의 텍스트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prescriptive한 텍스트를 주된 재료로 이루어진 연구가 특정 시대 해당 종교의 '史'적 연구가 될 수 있을까. 기껏해야 '~~教 教理史 혹은 '~~教 思想史' 정도는 될 수 있을 지 몰라도 '~~教史'라고는 할 수 없다.
2008년 05월 20일
영국 내에서도 도시를 바꿔가며 몇 번 주거를 옮긴 전력이 있고, 중간 중간 다른 나라에 살았던 경험도 있어서 남들에 비해 자주 이사를 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사에 익숙해진 나머지 이제는 새 집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이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는...절대 말할 수 없다. 적지않은 살림살이 - 문제의 근원은 과도한 분량의 책 - 덕분에 정도 차는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사는 트라우마에 가까운 경험이다. 게다가 같은 도시 내에서 움직이는 경우보다 장거리 심지어는 해외로 움직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달관할 때도 되었는데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그동안 살았던 집들, 도시들을 떠올려 보니 어쩐지 타이페이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다지 불편한 것도 없고 불만스러운 것도 없었던 도쿄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즐거운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짜증들이 뒤섞여 있었음에도 일상의 순간순간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어쩐지 그리운 기분으로 돌아보게 되는 것은 역시 타이페이에서의 생활인 것 같다. 살던 집도 비교적 쾌적했고, 위치가 좋은 덕에 저녁에 외출하기도 편했고, 근처에 재미있는 가게도 많았고, 괜찮은 서점도 많았고, 사람들도 재미있었고.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비교적 여유있는 기분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것도 한몫 했고. 그 동안 살았던 집들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08년 05월 19일
1. 몇 주전에 약속이 있어서 시내의 모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이 추천하는 케잌 몇 종류를 먹고 돌아왔다. 나중에 아내에게 모 카페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먹고 왔다고 했더니 그 카페 굉장히 유명한 곳이라고 알려 주었다. 어쩐지 케잌과 커피가 맛있고 일본인 관광객들이 좀 많더라니. 생각해 보니 이것도 나에게 늘상 일어나는 패턴 중 하나이다 - 아무 것도 모르고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먹고 돌아온다. 대개 만나는 상대가 장소를 지정한다. 당시에는 맛있게 먹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돌아온다. 알고 보니 유명한 가게의 유명한 음식이더라. 좀 더 제대로 알고 음미할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가급적 어디인가 갈 일이 생기면 아내에게 미리 물어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때가 되면 늘 잊어버리고 만다. 2. 외국에서만 자란 중국계 2세대들 중 중국어를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말하는 방언이 그냥 중국어라고 막연히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본의 아니게 A가 통화하는 내용을 종종 듣게 되는데, 어떤 때는 광동어로 전화를 받고 어떤 때는 보통화로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막상 몇 가지 어휘에 관해 질문해보면 광동어와 보통화를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 상대방이 광동어로 이야기를 하면 무의식적으로 광동어로 응대를 하고, 보통화로 말을 걸어 오면 보통화로 응대를 하는 모양이다. A의 경우에는 광동어에 더 익숙한 모양인지 보통화로 말을 할 경우에도 발음이나 억양이 광동어스러운 구석이 좀 있기는 하다.
2008년 04월 23일
급하게 일을 보느라 하루 종일 런던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저녁무렵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패딩턴 역이었나. 열차가 고장났으니 다른 선로로 오는 다음 열차로 모두 옮겨 타라는 방송이 나왔다. 다음 열차는 절반쯤 비어서 오던 터라 일을 마치고 피곤한 기색의 사람들이 가방이나 짐을 아무렇게나 의자 위에 올려 놓고 있다가 갑자기 선행열차의 승객이 합류하자 부랴부랴 가방을 치우고 자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런던 지하철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평소같으면 그냥 서서 가겠지만, 오늘은 조금 피곤했던 터라 나도 모르게 빈 자리를 찾아 눈을 두리번거렸다. 비닐봉지 꾸러미 몇 개와 가방을 옆 좌석에 올려 놓고 중국어신문을 보던 아저씨가 이리저리 짐을 치우길래 아무 생각없이 자리에 앉았다. 자기 무릎 위에 올려 놓았던 짐이 좀 많았던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 등 뒤 창틀에 짐 일부를 올려 어렵사리 고정시키고 나더니 나에게 국적을 묻는다.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이라고 대답하자 짧은 영어로 한국 휴대폰 좋다고 말을 건네는 50대로 보이는 중국 아저씨. 혹시 중국어 할 줄 아냐고 그래서 조금 한다고 그랬더니 직업이 뭐냐, 어디 사냐,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냐, 중국 가 봤냐...등등으로 시작한 별 다를 것 없는 대화. 내 성격에 평소 같으면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만 하고 말 텐데, 오늘은 왜인지 내 쪽에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내게 되었다. 中醫라고 자기 직업을 먼저 밝혀서였을까. 북경에서 중의학원을 졸업하고 학교 동창인 아내와 함께 의사생활하다가 친구 권유로 처자식들 놔두고 런던으로 떠나 온 지 8년 되었다는 이 아저씨. 지금은 해머스미스에서 중의원을 하고 있고 아내도 함께 살고 있지만, 나이 들어서 시작한 타향살이라 처음에는 혼자 외로웠고 아직도 말이 잘 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지하철에서 처음 본, 이름도 모르고 국적도 다른 50대와 30대의 사내 둘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동시에 상대의 손을 움켜쥐며 몸 조심하라는 작별인사를 나누다니. 나는 내가 왜 그 아저씨의 손을 잡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나에게서 무엇을 본 걸까.
| |||||||||||